황교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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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위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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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은 "(내가 수임한 사건은) 선임계를 다 제출했다"고 하며 '101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법조윤리협의회는 황교안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까지 포함하여 '119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제출함으로써 위증이 논란이 되었다. <ref>[http://omn.kr/dwkp "선임계 다 제출"... 2년 전 황교안의 '위증 의혹']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2일 구영식 기자</ref> 황교안은 이에 대해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은 아까 다른 위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법인에서 수임한 사건, 선임한 사건, 선임계를 낸 사건, 담당한 사건, 이런 얘기들을 막 섞어서 얘기를 하면서 위원님과 제 사이에 질의와 답변이 오가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정리하자면 제가 담당한 사건은 119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송무사건이 있고 자문사건이 있습니다. 송무사건 중에서 변론을 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빠짐없이 선임계를 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전제의 취지였습니다.", "위원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용어가 많이 혼선을 빚으면서 설명들이 복잡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101건에 대해서 선임계가 다 제출이 되어 있느냐’ 이런 질문이 있었고 제가 답변한 내용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정정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좀 부정확한 표현이어서 제가 그때 분명하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제가 수임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건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당 변호사로 선임된 사건들은 선임계를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것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 기억을 토대로 해서 답변을 드린다는 점을 말씀을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그 선임계 제출에 대해서 말씀드린 취지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담당한 모든 사건에서 선임계가 제출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변론을 한 경우에는 모두 제출되었다 이런 말씀을 거듭 드린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이 막 여러 용어들이 혼선되면서 부정확하게 그렇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한 119건 이것은 전부 송무사건과 제가 맡았던 순수 자문사건 이런 것을 다 포함한 그런 총수입니다. 뭘 숨기고 가리고 할 것이 없이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다 제출한 것입니다. 그중에 송무사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접 변론 활동을 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지 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 혼선이 좀 있었는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설명하였다. 2013년 2월 28일 장관청문회 당시 황교안은 "후보자가 보관하고 있던 업무자료나 기억 등을 토대로 검토하여 본바 법무법인 재직기간 중에 팀 소속 변호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변론계획 수립, 법리 검토, 의견서 작성 제출 등으로 담당한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사건 54건, 민사, 상사, 가사, 행정사건 47건, 합계 101건, 그 외에도 수시로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는 서면 답변 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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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은 "(내가 수임한 사건은) 선임계를 다 제출했다"고 하며 '101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법조윤리협의회는 황교안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까지 포함하여 '119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제출함으로써 위증이 논란이 되었다. <ref>[http://omn.kr/dwkp "선임계 다 제출"... 2년 전 황교안의 '위증 의혹']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2일 구영식 기자</ref> 황교안은 이에 대해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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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공무원법(제64조)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6조)의 겸직금지 위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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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은 아까 다른 위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법인에서 수임한 사건, 선임한 사건, 선임계를 낸 사건, 담당한 사건, 이런 얘기들을 막 섞어서 얘기를 하면서 위원님과 제 사이에 질의와 답변이 오가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정리하자면 제가 담당한 사건은 119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송무사건이 있고 자문사건이 있습니다. 송무사건 중에서 변론을 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빠짐없이 선임계를 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전제의 취지였습니다.", "위원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용어가 많이 혼선을 빚으면서 설명들이 복잡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101건에 대해서 선임계가 다 제출이 되어 있느냐’ 이런 질문이 있었고 제가 답변한 내용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정정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좀 부정확한 표현이어서 제가 그때 분명하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제가 수임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건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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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에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 의원이 "지금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재직중이지요?"라고 묻자 황교안은 "이번에, 얼마전에 사임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황교안은 2011년 12월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취임해 2012년 1월 등기이사로 등재된 이후부터 2015년 6월 5일까지 이사직을 유지해오고 있어서 위증 논란과 함께 국가공무원법(제64조)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6조)의 겸직금지 위반이 문제되었다. <ref>[http://omn.kr/dx8n 황교안, 법무부 장관 때도 '아가페재단' 이사 유지]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5일 구영식 기자</ref> 위와 관련,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황 후보자가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나, 2015. 6. 5. "인터넷에서 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분야별 법인종류 등을 확정할 때 발생한 착오(재단법인-아가페 vs 재단법인-재단법인 아가페)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발생했다"라며 "황 후보자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 제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정정했다. 아가페재단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아가페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독교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는 5일 황교안 후보자는 지난 2013년 2월 이사직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소망교도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후보자는 2013년 2월 27일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기 직전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직을 사임했고, 이는 법인 등기부 등본에도 등재된 명확한 사실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5517</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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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담당 변호사로 선임된 사건들은 선임계를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것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 기억을 토대로 해서 답변을 드린다는 점을 말씀을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그 선임계 제출에 대해서 말씀드린 취지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담당한 모든 사건에서 선임계가 제출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변론을 한 경우에는 모두 제출되었다 이런 말씀을 거듭 드린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이 막 여러 용어들이 혼선되면서 부정확하게 그렇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한 119건 이것은 전부 송무사건과 제가 맡았던 순수 자문사건 이런 것을 다 포함한 그런 총수입니다. 뭘 숨기고 가리고 할 것이 없이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다 제출한 것입니다. 그중에 송무사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접 변론 활동을 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지 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 혼선이 좀 있었는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설명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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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8일 장관청문회 당시 황교안은 "후보자가 보관하고 있던 업무자료나 기억 등을 토대로 검토하여 본바 법무법인 재직기간 중에 팀 소속 변호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변론계획 수립, 법리 검토, 의견서 작성 제출 등으로 담당한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사건 54건, 민사, 상사, 가사, 행정사건 47건, 합계 101건, 그 외에도 수시로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는 서면 답변 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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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장관 임명 축하금 1억1714만 원 논란 === |
=== 법무부장관 임명 축하금 1억1714만 원 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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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 신고 누락 논란 === |
=== 재산 신고 누락 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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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의 아내 최지영의 금융자산이 최근 6년간 6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이 제기됐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최 모 씨의 금융자산은 2,325만 원이었지만 2014년 12월 31일 기준 금융자산은 6억 5153만 원으로 신고되었다. 황교안의 인사청문회를 돕고 있는 국무총리실은 “대학에서 일하는 후보자 아내의 급여와 저축 등으로 금융자산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최지영의 소득은 6년간 연평균 5,000여만원이고 최씨 소유의 경기도 용인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6년 동안 1억 8900만 원 올랐을 뿐이라, 불투명한 소득이 있었거나 황교안이 이전에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528004010 黃 부인 금융자산 6년새 6억원↑…野 “재테크의 달인… 해명하라”]《서울신문》2015년 5월 28일 임일영 기자</ref> |
황교안의 아내 최지영의 금융자산이 최근 6년간 6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이 제기됐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최 모 씨의 금융자산은 2,325만 원이었지만 2014년 12월 31일 기준 금융자산은 6억 5153만 원으로 신고되었다. 황교안의 인사청문회를 돕고 있는 국무총리실은 “대학에서 일하는 후보자 아내의 급여와 저축 등으로 금융자산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최지영의 소득은 6년간 연평균 5,000여만원이고 최씨 소유의 경기도 용인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6년 동안 1억 8900만 원 올랐을 뿐이라, 불투명한 소득이 있었거나 황교안이 이전에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528004010 黃 부인 금융자산 6년새 6억원↑…野 “재테크의 달인… 해명하라”]《서울신문》2015년 5월 28일 임일영 기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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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 내정 후 세금 '지각납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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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여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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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후 아들 황성진(31)이 전세보증금 3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지각납부함으로써 황교안이 자녀에게 먼저 재산을 증여한 뒤 인사청문회 검증 때 탈세 논란이 우려되자 급히 세금을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3082.html 2년 전엔 아들, 이번엔 딸…황교안 ‘청문회용 증여세’ 의혹]《한겨레》2015년 5월 28일 김성환 기자</ref> 그런데 2015년 5월, 황교안이 청와대로부터 국무총리 내정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은 후, 황교안이 딸 황성희에게 증여한 결혼자금 1억2000만원에 대한 증여세를 급하게 납부하게 하여 '청문회용 증여세 납부'라는 비판을 받았다.<ref>[http://www.nocutnews.co.kr/news/4418359 황교안 딸, 총리 내정 직전 증여세 납부]《노컷뉴스》2015년 5월 27일 유동근 기자</ref> 그러나,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녀는 황교안이 총리로 지명되기 20일 전인 2015. 5. 1. 이미 증여신고를 마친 것으로 확인되었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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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소득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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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5월 26일에 종합소득세 3건을 한꺼번에 낸 것으로 확인되어 2014년 소득신고에 누락시킨 것을 '지각납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ref>[http://news.jtbc.joins.com/html/681/NB10905681.html 황교안, 임명동의안 제출 당일 종합소득세 3건 납부]《JTBC》2015년 5월 29일 조민진 기자</ref> 황교안은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부분들은 위원님이 말씀하시다시피 큰 부분이 아니었는데 제가 불찰로 꼼꼼히 다 못 챙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야 될, 또 통상 알 수 있는 이런 세금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내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신 것처럼 그렇게 미흡한 점이 생긴 점에 대해서는 송구하게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꼼꼼하게 잘 챙겨서 그런 말씀들이, 걱정들이 나오시지 않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여 송구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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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 === |
===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 === |
2018년 9월 6일 (목) 21:23 판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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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44대 국무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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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2015년 6월 18일~2017년 5월 11일 |
대통령 | 박근혜 (2015 ~ 2017) 황교안 (권한대행, 2016 ~ 2017) |
전임 | 이완구(제43대) |
후임 | 이낙연(제45대)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57년 4월 15일 | (67세)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창원[1] |
학력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최지영 |
자녀 | 1남 1녀 |
종교 | 침례교[2] |
황교안(黃敎安, 1957년 4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제63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으로 제44대 국무총리에 올랐고 2016년 12월 9일부터 2017년 5월 10일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시작했다.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뒤, 2011년 9월 19일부터 2013년 1월까지 대한민국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검찰청 공안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지낸 공안검사로 활약하였으며,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을 저술해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3]
2013년 제63대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 이석기 사건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법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무변촌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을변호사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시행 초기에는 실효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시행 자체에 대하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4] 이후 계속 제도를 보완하여 대한민국의 전체 무변촌 1,412곳에 마을변호사 1,455명을 배치하였다.[5]
2015년 5월 제44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2015년 6월 18일 취임하였다.[6]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되어 2017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2017년 5월 5일, 대선 후 바로 사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사표를 제출하였고 5월 11일에 사표가 수리되었다.
학력
생애
검사 생활
1981년에 사법시험 제23회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제13기에 들어가 1983년 2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가 되어 1983년 3월까지 재직했다.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0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거쳐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4년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제2부 부장검사,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거쳐 2004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되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 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삼성 X파일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2005년에는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서울지검 공안2부에 재직하던 1990년 2월 7일 "한통련ㆍ유럽민협 등 해외단체와 범민족대회 관련한 자료를 팩스를 통해 주고 받았다"는 이유로 전민련 국제협력국장 김현장을 국가보안법의 국가기밀누설ㆍ회합통신ㆍ금품수수죄 등을 적용하여 구속하여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구형하여 징역 7년 자격정지7년을 선고받게 하였다.
서울지검 공안1부에 재직하던 1992년 12월 23일 ‘남한조선노동당 사건’과 관련해 황인욱에게「19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를 넘겨진 이유로 김대중 대표 비서 이근희 민주당 김대중 전 대표 국방위원회 담당 업무보조원 이근희(26)를 구속기소하여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구형하여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을 받게 하였다.
1999년 파업유도 사건 때는 특별검사팀에 파견되었다.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에 있을 때인 2002년 한총련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점거하여 농성을 하였는데 이때 38명의 주동자들을 전원 구속수사하였다.
한때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탈락했다.[7] 이후 2006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2007년 서울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2007년 10월 21일 그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인 이명박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8] 당시 황교안은 <하느님 편에서 보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글에서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경선후보들 사이에 검증공방이 한창이고, 그 과정에서 소위 네거티브 전술도 종종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유력한 경선후보 중의 한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경쟁은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썼다.[8]
2008년 3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거쳐 2009년 1월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고, 2009년 8월 대구고검 검사장, 2011년 1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다가 2011년 8월 2일 법관에서 퇴직했다.[9] 변호사 재직 당시 그는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내기도 한 공안통이라는 평이 있다.[10]
삼성 X파일 사건 수사와 안기부, 국정원 수사, 강정구 수사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김은성이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줄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 등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 도청한 사건으로, 안기부 도청 조직 '미림' 팀장이 면직 후 X파일을 외부로 유출해 2005년 7월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등 삼성 쪽 인사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삼성 X파일 사건'을 '불법 도청 사건'으로 몰고 가는 식으로 '재벌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1] 2005년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같은 해 국가보안법과 사상의 자유 사이의 논란이 컸던 강정구 교수 사건 때 구속수사를 추진했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기소처리해, 그는 천정배와 갈등하였다.[10] 결국 김종빈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도 했다.[10]
그 뒤 2006년 검사장급 인사에서 낙마해 당시 노무현 정부가 공안분야를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10]
2013년 10월 17일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황교안의 이름이 2002년 삼성 떡값 명단에 들어있으며 떡값 액수는 500만 원이라고 하였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가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에 앞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앞에서 작성한 자술서에 의하면 2002년 당시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 되면서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황교안은 "떡값 명단의 발원지는 모두 김용철 변호사인데 그분의 말에 대해서는 2007년 특검에서 다 조사를 했고, 특검에서는 '혐의 없다'라고 발표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3년 11월 13일 열린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삼성 특검' 수사 자료를 공개했는데, 황교안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에 2, 3회, 각 500만 원, 많게는 2000만 원까지 떡값을 수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일명 '삼성 떡값 리스트' 문건이었다. 황교안은 '삼성 떡값' 연루 의혹을 극구 부인하였다.[12]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2013년 9월 4일 정부를 대표하여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황교안 장관은 이 사건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라 하였다.[13]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재석의원 289명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 등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고, 수원지방법원에서는 같은 달 5일 이석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으며 검찰은 같은 달 26일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한 후 2014년 2월 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하였다.[14] 2014년 2월 17일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선동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였다.[15] 이에 검찰과 피고인측은 모두 항소를 하였고 2014년 8월 11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내란선동에 대하여는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였다.[16] 역시 양측이 모두 상고하여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는데,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선동은 인정되나 내란음모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다수 의견에 따라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석기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은 확정되었다.[17]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이석기 사건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違憲)정당해산심판’ 청구에서도 황교안 장관은 정부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은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18] 황교안 장관은 2014년 11월 25일에 있었던 최종변론에도 직접 출석하여 "통진당의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 역시 용공 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는것"이라며 정당해산을 거듭 촉구했다.[19][20]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결정을 하였다.[21]
변호사 생활과 법무부장관
검사에서 퇴임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2011년 10월 3일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되었다.[22]
2011년 12월 14일에는 방송통신심위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되고[23], 같은 날 선거방송심의위 위원장에 선출되었다.[24] 이 무렵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수감중인 대북사업가인 장기수 이 모씨의 변호사에 선임되어, 그의 변호도 맡기도 했다.[25] 2012년 CBS 방송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법무부장관의 물망에 오르다가 2013년 1월 법무부장관 후보로 내정되었다.
2013년 3월 청문회를 통과하여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장관 재직 중이던 2015년 6월 13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되어 청문회를 통과, 바로 국무총리가 되었다.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 발표 연기
청와대는 대한민국 44대 국무총리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내정하였다.[26] 청와대는 21일 오전 10시 국무총리 내정자를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10시 5분 전, 돌연 '총리 발표'를 연기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으로 급하게 뛰어와 보도를 늦춰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기자들 사이에 '후보자 교체, 무기한 연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시 10시 5분경, 민경욱 대변인이 춘추관을 방문하여 "10시 15분에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 후,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을 발표하였다. 이런 해프닝에 대하여, '새누리당이 공안 총리 에 대한 야당 반대를 우려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고하라'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며 당-청 갈등이 원인이라는 논란이 일었다.[27]
대통령 권한대행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된 2016년 12월 9일부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10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보수층들 가운데서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2017년 3월 15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28]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했고, 당분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29]
퇴임 이후
2018년 8월, 자신의 수필집인 <황교안의 답>을 출판했다. 부제는 '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이다.[30]
논란과 의혹
징집 면제 의혹
황교안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하다가 1980년 징병 검사 때 ‘만성 담마진’(두드러기 질환)이란 피부병으로 징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 [31] 황교안은 징병검사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이듬해인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점 때문에 잇단 징병검사 연기와 면제 판정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황교안이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기도 전에 징집을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즉 황교안은 1980년 7월 10일 병원으로부터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았는데 이미 7월 4일 병무청으로부터 징집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다. 김광진 의원실은 인사청문회 전 "병무청과 병원측에서도 질병에 대한 정밀검사 등을 모두 받은 후 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순서인데 황교안은 반대로 병징집제 판정을 받아놓고서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다.[32] 그리고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의 질병을 갖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받았는데, 황교안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시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주는 그런 질환은 아니다"고 해명했다.[33] 당시 군의관이었던 손광식은 "7월 4일 날 정밀검사 보낼 때는 ‘이상’을 찍고, 이 두 칸은 비워 둔 채 정밀검사로 갑니다. 갔다가 정밀검사가 7월 10일 날 결과가 나오면 그다음에 여기 비워 둔, 7월 4일 자에 비워 둔 두 칸에 그 판정을 기록합니다."라고 증언하여 7월 4일 병무청 병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처럼 기재되어 있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징병검사할 때 일반 신체검사 환자가 거의 대부분이고 이 후보자처럼 면제받는 사람은 극소수라서 그런지 그런 오해를 받도록 이렇게 일반 신체검사용으로 한 라인에다가 좍 써 놨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나옵니다."라고 증언하여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오해에 불과하다고 증언하였다.[34]
황교안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무청 직원인 김용학은 " 당시에는, 84년 이전 당시에는 관련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최초 검사 일자를 면제 일자로 할지 또는 최종적으로 병역 처분한 날짜를 면제 일자로 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84년 9월 22일 날 시행령이 개정돼서 ‘군병원으로부터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신체검사를 받은 때에 병역 처분한다’라고 시행령이 바뀌어졌습니다."고 증언하였다.[35] 만성 담마진 판정 전에 징집 면제를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병역 비리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36]
여성 비하 논란
2004년, 당시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이던 황교안은 기독교 신자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하여“사실 부산 여자들이 드센 이유도 있다. 반면 남자들은 말싸움이 안되니까 손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고…”라고 했다.[37] 황교안은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고, 그러나 사실은 그 말의 취지를 그 당시의 이야기의 앞뒤를 다 보면 가정폭력의 원인이 술에 있다,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이 일어난다 이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덧붙으면서 이런 불필요한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필요한 말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라며 이해를 구했다.[38]
역사관
현대사나 정치 현실에 대한 황 후보자의 '인식'도 논란이 됐다. 황교안은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바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두고는 농성자들의 불법·폭력성이 원인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39]
전관 예우 및 전화 변론
황교안은 16개월 동안 총 119건의 사건을 담당하여 월 평균 6건으로 일반 변호사보다 3배 이상 많이 수임을 한 것이 확인되었고 일반 변호사들도 꺼리는 고소 대리 사건을 수임한 기록도 나와 전관예우 의혹도 제기되었다.[40] 황교안은 2011년 9월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2013년 1월까지 16개월 동안 월평균 1억원으로 세전을 기준으로 16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과거 황교안이 16개월 동안 재판을 수임한 건수는 단 2건이였고, 2건의 재판은 부동산업자가 투자자들을 속여 땅을 사기분양한 사건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가 있었으나[41],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19건을 담당한 사실이 확인되어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사실과 다른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42]. 황교안은 2013년 2월28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그 많은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서는 거듭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주변 분들이 다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봉사활동과 기여활동을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2015년 6월 9일 인사청문회 둘째 날에 황교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장애인단체나 또 해외봉사단체나 이런 데 제가 기부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있지만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지 않고 아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사실은 제가 그때 익명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회에도 ‘내가 했다는 걸 외부에 알리지 마라’ 그래서 지금까지 안 알렸던 겁니다. 지금은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할 수 없이 제가 신고하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라고 공개 경위를 설명하였다.[43]
또한, 변호사법 등에 따라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검찰이나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해야 하지만 황교안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이 19건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소위 '전화변론(전관 변호사들이 고액의 수임료 수수, 소득 신고 누락에 따른 탈세 등을 위해 사용하는 변칙적인 사건 수임)'을 통해 수사나 재판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44] 황교안은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선임계는 변론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수사에 나가서 방어를 하거나 또는 법정에 나가서 관여를 하거나 그런 변론이 있을 때 내는 게 선임계입니다. 제가 변론에까지 나가지 않은 단계였"다며 변호사법은 변론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임계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변론활동을 하지 않은 이상 변호사법에 위반된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45]
황교안이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 변호사 시절 사건 수임내용 관련 자료 중 19건이 화이트칠을 해서 제출한 것을 두고 고의적인 인사청문회 방해 행위라는 논란과 함께 '전화변론' 의혹을 받았다. [46] 위 19건은 법조윤리협의회이 법무법인 태평양에 재직중이던 황교안으로부터 담당사건 자료로 신고된 자료 중 19건을 신고 대상이 아닌 자문 사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홍훈 법조윤리협회회 이사증은 2015년 6월 10일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게 왜 이렇게 됐는가는 과거에, 전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할 때 자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89조의9제2항1호의 규정상은 관련 시행령, 변호사법 시행령이라든지 또 변협회에서 수임사건 제출규정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변호사법 3조라든지 여러 가지 규정을 관련해서 봤을 때 이 수임사건을 뭐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자문도 포함된다고 하는 그런 논의도 있었지만 법의 규정상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밀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넓게 해석했다 자칫 잘못해서 이것이 아니다 할 때는 법조윤리위원 전체가, 위원이라든지 직원이라든지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또 이 입법 취지를 저희가, 2013년도에 법을 개정할 때 충분히, 입법을 할 때 과정을 저희가 회의록을 조사해 보고 그 뒤에 우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도 ‘이 법은 좀 문제다’ 작년에 세미나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미 종전 인사청문회 때 이 법이 저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는 정리가 됐기 때문에 이 경우는 수임 사건에 한하자…… 그리고 지금 자문 사건에 대해서는 저희 윤리협의회에 신고하는 변호사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 자문하고 수임사건하고를 같이 해서, 그렇다면 법의 해석에 따라서 수임사건만 국회에 자료 제출해 주는 것이 맞다 해 가지고 그것을 사후에, 지난번에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날 일요일이 돼 가지고 다 비상임들이라 서면으로 결의를 할 때도 그것에 대한 내용은 충분히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수임사건의 범위에 대해서. 그래서 다른 위원들도 대다수가 다 동의를 했고 그래서 국회에 그런 의견을 보냈던 겁니다."라고 증언하였다[47].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위증
2013년 2월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은 "(내가 수임한 사건은) 선임계를 다 제출했다"고 하며 '101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법조윤리협의회는 황교안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까지 포함하여 '119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제출함으로써 위증이 논란이 되었다. [48] 황교안은 이에 대해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은 아까 다른 위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법인에서 수임한 사건, 선임한 사건, 선임계를 낸 사건, 담당한 사건, 이런 얘기들을 막 섞어서 얘기를 하면서 위원님과 제 사이에 질의와 답변이 오가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정리하자면 제가 담당한 사건은 119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송무사건이 있고 자문사건이 있습니다. 송무사건 중에서 변론을 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빠짐없이 선임계를 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전제의 취지였습니다.", "위원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용어가 많이 혼선을 빚으면서 설명들이 복잡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101건에 대해서 선임계가 다 제출이 되어 있느냐’ 이런 질문이 있었고 제가 답변한 내용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정정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좀 부정확한 표현이어서 제가 그때 분명하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제가 수임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건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당 변호사로 선임된 사건들은 선임계를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것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 기억을 토대로 해서 답변을 드린다는 점을 말씀을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그 선임계 제출에 대해서 말씀드린 취지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담당한 모든 사건에서 선임계가 제출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변론을 한 경우에는 모두 제출되었다 이런 말씀을 거듭 드린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이 막 여러 용어들이 혼선되면서 부정확하게 그렇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한 119건 이것은 전부 송무사건과 제가 맡았던 순수 자문사건 이런 것을 다 포함한 그런 총수입니다. 뭘 숨기고 가리고 할 것이 없이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다 제출한 것입니다. 그중에 송무사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접 변론 활동을 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지 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 혼선이 좀 있었는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설명하였다. 2013년 2월 28일 장관청문회 당시 황교안은 "후보자가 보관하고 있던 업무자료나 기억 등을 토대로 검토하여 본바 법무법인 재직기간 중에 팀 소속 변호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변론계획 수립, 법리 검토, 의견서 작성 제출 등으로 담당한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사건 54건, 민사, 상사, 가사, 행정사건 47건, 합계 101건, 그 외에도 수시로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는 서면 답변 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49].
국가공무원법(제64조)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6조)의 겸직금지 위반
2013년 2월에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 의원이 "지금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재직중이지요?"라고 묻자 황교안은 "이번에, 얼마전에 사임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황교안은 2011년 12월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취임해 2012년 1월 등기이사로 등재된 이후부터 2015년 6월 5일까지 이사직을 유지해오고 있어서 위증 논란과 함께 국가공무원법(제64조)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6조)의 겸직금지 위반이 문제되었다. [50] 위와 관련,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황 후보자가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나, 2015. 6. 5. "인터넷에서 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분야별 법인종류 등을 확정할 때 발생한 착오(재단법인-아가페 vs 재단법인-재단법인 아가페)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발생했다"라며 "황 후보자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 제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정정했다. 아가페재단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가페재단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아가페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독교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는 5일 황교안 후보자는 지난 2013년 2월 이사직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소망교도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후보자는 2013년 2월 27일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기 직전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직을 사임했고, 이는 법인 등기부 등본에도 등재된 명확한 사실이다."라고 밝혔다[51].
법무부장관 임명 축하금 1억1714만 원 논란
황교안이 2013년 2월13일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사직한 2013년 2월 18일까지 5일간 지급받은 상여금 96,627,000원과 급여 6,433,928원을 받았는데 이 돈의 성격이 논란이 되었다. [52]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장관 취임 '축하금'을 줬거나, 일종의 '보험료'를 낸 것으로 뼛속까지 전관예우를 받은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53] 황교안은 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서면 답변 자료를 통해 "2월 13일 날 지명을 하셨고 2월 18일까지 기존 업무 정리, 인수인계 등의 일을 했다"고 답변하였고, 인사청문회 첫날인 2015년 6월 8일 "한 달 18일을 근무를 했고 일을 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 있었던 성과급이 지급된 겁니다. 그 이전의 지급 내역과 비교해 보시면 위원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며 성과급 및 급여 지급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였다.[54]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무마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진행중이던 채동욱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2년 대선 당시 댓글 등을 통해 정치에 관여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으나, 황교안이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보류했다. 당시 수사팀장이던 윤석열 부장검사가 직속상관인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항명하는 사태가 전개됐다. 황교안은 윤석열 부장검사와 박형철 검사에게 징계를 내린 후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시켰다.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걸 끝까지 반대했다.[55] 그러나 2015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황교안의 판단과는 달리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한편 2013년 9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자 황교안 장관은 채동욱 총장 감찰을 지시했는데, 이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첫 사례다. [56]
전관 예우 수익 기부 논란
황교안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본인과 아내, 최근 결혼한 딸 한명(아들 재산은 공개 거부)의 재산으로 모두 22억9835만원을 신고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로 번 돈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던 황교안은 2013년에 낸 법정기부금 1억110만여원, 지정기부금 1568만여원을 기부하였고 2014년에는 법정기부금 305만여원과 지정기부금 1036만여원을 기부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수익의 ‘십일조’에도 못미치는 액수인 1억3000여만원 정도만 기부한 것을 두고 '찔끔 기부'라는 비판을 받으며 기부약속을 지킨것인지 안 지킨것인지 논란이 일었다.[57]
재산 신고 누락 논란
황교안의 아내 최지영의 금융자산이 최근 6년간 6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이 제기됐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최 모 씨의 금융자산은 2,325만 원이었지만 2014년 12월 31일 기준 금융자산은 6억 5153만 원으로 신고되었다. 황교안의 인사청문회를 돕고 있는 국무총리실은 “대학에서 일하는 후보자 아내의 급여와 저축 등으로 금융자산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최지영의 소득은 6년간 연평균 5,000여만원이고 최씨 소유의 경기도 용인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6년 동안 1억 8900만 원 올랐을 뿐이라, 불투명한 소득이 있었거나 황교안이 이전에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58]
총리 내정 후 세금 '지각납부'
증여세
2013년 2월,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후 아들 황성진(31)이 전세보증금 3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지각납부함으로써 황교안이 자녀에게 먼저 재산을 증여한 뒤 인사청문회 검증 때 탈세 논란이 우려되자 급히 세금을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었다.[59] 그런데 2015년 5월, 황교안이 청와대로부터 국무총리 내정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은 후, 황교안이 딸 황성희에게 증여한 결혼자금 1억2000만원에 대한 증여세를 급하게 납부하게 하여 '청문회용 증여세 납부'라는 비판을 받았다.[60] 그러나,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녀는 황교안이 총리로 지명되기 20일 전인 2015. 5. 1. 이미 증여신고를 마친 것으로 확인되었다[61].
종합소득세
황교안은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5월 26일에 종합소득세 3건을 한꺼번에 낸 것으로 확인되어 2014년 소득신고에 누락시킨 것을 '지각납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62] 황교안은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부분들은 위원님이 말씀하시다시피 큰 부분이 아니었는데 제가 불찰로 꼼꼼히 다 못 챙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야 될, 또 통상 알 수 있는 이런 세금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내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신 것처럼 그렇게 미흡한 점이 생긴 점에 대해서는 송구하게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꼼꼼하게 잘 챙겨서 그런 말씀들이, 걱정들이 나오시지 않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여 송구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63].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
법무부가 황교안 총리후보자 청문회 지원을 위해 정수봉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1부장과 권순정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 등 현역 부장검사 두 명을 포함한 지원팀을 꾸려 국무총리실 청문회 지원단에 파견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64]
종교
야간 신학대학을 다니며 교회 전도사를 지내기도 한 독실한 침례교 소속 개신교 신자다. 법조계 기독교모임인 '애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65]
- 어릴 때부터 목동 성일침례교회의 성도다.[2] 황교안은 1996년부터 매년 이 교회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칠례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전칠례는 1995년에 작고한 어머니의 이름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던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장학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 아가페는 민영 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온 개신교 단체로, 2010년 12월 경기도 여주시(당시 여주군)에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를 개소했으며, 황교안은 2001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아가페의 이사를 맡은 바 있다. 교도소 건립을 위해 본인 명의로 30만원을 헌금했고, 법무법인 로고스는 1,783만 9,000원을 기부한 것으로 아가페소식지에 기재돼 있다.
“ | 교도소 안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의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입소율은 30%가 넘는다. 그런데 브라질의 휴마이타 기독교교도소, 미국 텍사스주 교도소의 기독교교정프로그램(IFI)을 거친 재소자의 재입소율은 5%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재소자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만 확실한 갱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복음에는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엄청난 재범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복음뿐이다. 이제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전국 45개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60,000여 명의 갇힌 자들을 생각해야 할 때이며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66][67] | ” |
평가
검찰 재직 당시 그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검찰 내 신망이 높았다.[68]
경력
연도 | 사항 |
---|---|
1981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
- | 제13기 사법연수원 |
1992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4 | 법무연수원 교관 |
1995 |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청장 |
1997 | 사법연수원 교수 |
1999 |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5부 부장검사 |
2000 | 대검찰청 공안1과 과장 |
2001 | 서울지방검찰청 컴퓨터수사부 부장 |
2002 |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 부장검사 |
2003 |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
2004 |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
2005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
2006 |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
2008.03 |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
2009.01 |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
2009.08 ~ 2011.01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2011.01 |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
2011 |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 |
2011.12 ~ 2012.05 |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
2012 ~ 2013.03 | CBS 자문위원 |
2013.03 ~ 2015.06 | 제63대 법무부 장관 |
2015.06 ~ 2017.05 | 제44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2015.06 ~ 2017.05 |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정부위원장 |
2015.11 | 故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장의위원장 |
2016.12 ~ 2017.05 |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
저서
- 《교회와 법이야기》, (요단출판사, 2012년), ISBN 9788935014262
- 《국가보안법》,(박영사, 2011년), ISBN 9788964547199
- 《집회 시위법 해설》, (박영사, 2009년), ISBN 9788971899434
- 《법률용어사전 2009》, (청림출판, 2009년), ISBN 9788935203666
- 《국가보안법 해설》, (집영출판사, 1998년), ISBN 8987320073
-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청림출판, 1998년), ISBN 9788935203369
- 《검사님 이럴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 (만나, 1994년), ISBN 8975960153
수상
- 성균관대학교 총동문회가 2018년 자랑스러운 성균관인으로 선정했지만 재학생과 졸업생 중심으로 수상 반대 서명운동이 전개되자 시상식이 예정된 1월 11일 시상식에 불참했다.
각주
- ↑ “황교안”. 《조선일보》.
- ↑ 가 나 황교안, 서울 목동 성일교회에서 17년간 장학금 기여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정현수 기자
- ↑ “별명은 '미스터 국가보안법'…황교안 후보자는 누구?”. 2015년 5월 26일.
- ↑ 마을변호사, 취지는 좋은데 상담실적은 ‘글쎄’《연합뉴스》2013년 8월 27일 손상원 기자
- ↑ 헌법가치 수호와 법질서 확립의 첨병에 선 황교안 장관《아시아투데이》2015년 1월 7일
- ↑ 새 총리 후보자 황교안은…朴정부 초대 내각 멤버, 외유내강형 ‘공안통’《국민일보》2015년 5월 21일 김현섭 기자
- ↑ 황교안의 검사장 탈락, 밉보였나 무능했나 한겨레신문 2015년 05월 29일자
- ↑ 가 나 황교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추한 모습” 미디어오늘 2015.05.28.
- ↑ 차동민 서울고검장, 조근호 법무연수원장 검사 생활 마감 노컷뉴스 2011년 08월 02일자
- ↑ 가 나 다 라 새 정부 법무장관에 황교안, 국방부장관에 김병관
- ↑ 황교안 누구?…‘삼성 X파일’ 때 삼성쪽 인사 모두 불기소《한겨레》2015년 5월 21일 김원철·정환봉 기자
- ↑ 황교안, 삼성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4일
- ↑ 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 황교안 “이석기는 지하혁명조직 총책” … 野도 체포동의 당론 찬성《한국경제》2013년 9월 5일
- ↑ '압수수색부터 1심 판결까지《YTN》2014년 2월 3일
- ↑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인정돼…징역 12년《한겨레》2014년 2월 17일 이정애 기자
- ↑ RO 내란음모 항소심 재판부, 이석기 의원 징역 9년 선고…'내란 선동' 인정, '내란음모' 무죄《조선일보》2014년 8월 11일 이정원 기자
- ↑ [이석기 확정 판결] 130명 회합 목적은 폭동… RO, 의심은 들지만 내란음모는 無罪《조선일보》2015년 1월 23일 양은경 기자
- ↑ '통진당 해산심판 첫 변론“대한민국 파괴"vs"민주주의 후퇴“ 장관 - 당 대표 맞붙다《동아일보》2014년 1월 29일 최예나 기자
- ↑ 황교안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 무너뜨린다《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박민제·이유정 기자
- ↑ 통진당 해산심판 최종변론 - 황교안 법무부장관《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심서현 기자
- ↑ 통진당, 북한식 공산주의 추종”…‘헌정 초유’ 해산 선고. 헌재, 8대1로…소속 5명 모두 의원직 박탈《문화일보》2014년 12월 19일 김병채·김동하 기자
- ↑ 연말부터 형사사건 수요 급증 겨냥 서울경제 2011-10-03
- ↑ 19대 총선 앞두고 선거방송심의위 구성
- ↑ 19대 총선 방송심의위 구성 문화일보 2011년 12월 15일자
- ↑ 종북 틈타 간첩사건 언론들 받아쓰기 광풍 미디어오늘 2012.06.07
- ↑ 새 총리 후보자 황교안은…朴정부 초대 내각 멤버, 외유내강형 ‘공안통’《국민일보》2015년 5월 21일 김현섭 기자
- ↑ <공지→연기→재공지> 황교안 총리 후보자 지명 둘러싼 ‘미스터리’《일요서울》2015년 5월 26일 박형남 기자
- ↑ “황교안 권한대행, 불출마 결정한 3가지 이유”.
- ↑ 강병철 (2017년 5월 11일). “文 대통령, 황교안 총리·박승춘 보훈처장 사표 수리”. 《연합뉴스》.
- ↑ “황교안에게 ‘참된 보수’란···수필집 ‘황교안의 답’ 출간”. 2018년 8월 21일.
- ↑ 황교안, ‘두드러기’ 병역면제…공안통 ‘Mr 국보법 《고발뉴스》 2013년 2월 14일
- ↑ 새정치 김광진 “황교안 두드러기 판정 받기도 전에 이미 병역면제 결정 받아” 《경향신문》 2015년 6월 5일
- ↑ 황교안, 3차례 징병검사 연기 후에 '두드러기'로 병역면제 쟁점 《한국일보》 2013년 2월 15일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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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교안, '만성 담마진' 판정 전에 병역 면제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4일
- ↑ "부산 여자가 드세서".. 황교안, 이번엔 '여성 비하' 논란《오마이뉴스》2015년 5월 26일 강민수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
- ↑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영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한겨레》2015년 5월 21일 노현웅·이승준 기자
- ↑ 황교안 과거 수임 실적 봤더니…'일반 변호사의 3배'《JTBC》2015년 6월 4일 공다훈 기자
- ↑ 황교안 후보자, 한달에 3억원을 어떻게 벌었을까? 《민중의소리》 2013년 2월 17일 정웅재 기자
- ↑ 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025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전화변론, 황교안 발목 잡을까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3일 구영식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황교안 과거 수임내역 19건 삭제" 청문회 뇌관 부상《JTBC》2015년 6월 1일 안의근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선임계 다 제출"... 2년 전 황교안의 '위증 의혹'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2일 구영식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황교안, 법무부 장관 때도 '아가페재단' 이사 유지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5일 구영식 기자
-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5517
- ↑ 박원석 "황교안, 법무장관 지명 후 태평양서 축하금 1억원 받아" 《뉴시스》 2015년 6월 1일 김용갑 기자
- ↑ 장관 지명 후 추가로 받은 1억원은 '축하금'?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1일 구영식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황교안 후보자, 검사·법무장관 시절 맡은 주요사건《세계일보》2015년 5월 24일 김태훈 기자
- ↑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영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한겨레》2015년 5월 21일 노현웅·이승준 기자
- ↑ ‘수임료 16억’ 황교안 1억만 기부…시늉만 낸 ‘찔끔 기부’《한겨레》2015년 5월 27일 김성환 기자
- ↑ 黃 부인 금융자산 6년새 6억원↑…野 “재테크의 달인… 해명하라”《서울신문》2015년 5월 28일 임일영 기자
- ↑ 2년 전엔 아들, 이번엔 딸…황교안 ‘청문회용 증여세’ 의혹《한겨레》2015년 5월 28일 김성환 기자
- ↑ 황교안 딸, 총리 내정 직전 증여세 납부《노컷뉴스》2015년 5월 27일 유동근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황교안, 임명동의안 제출 당일 종합소득세 3건 납부《JTBC》2015년 5월 29일 조민진 기자
- ↑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 ↑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뷰스앤뉴스》2015년 5월 24일 최병성 기자
- ↑ 법무부 장관 내정자 황교안, 불법도청 수사 지휘… 검찰내 대표적 공안통 《서울신문》 2013년 2월 13일
- ↑ 황교안 "재소자는 기독교로 교화해야 확실한 갱생" 《프레시안》 2013년 2월 15일 선명수 기자
- ↑ 황교안 "기독교정신으로 확실한 갱생 가능" 《불교닷컴》 2013년 2월 15일
- ↑ 검찰총장 동기들 속속 대형로펌行 매일경제 2011.10.0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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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 2017년 5월 10일 (권한대행) | 후임 문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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