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첸캄포
송첸캄포
སྲོང་བཙན་སྒམ་པོ | |
---|---|
토번 첸포 | |
대수 | 33대 |
재위 | 617년?–649년 |
전임 | 남리송첸 |
후임 | 망송망첸 |
재상 | |
이름 | |
휘 | 티 송첸감포 |
신상정보 | |
출생일 | 581년 |
사망일 | 649년 |
부친 | 남리뢴첸 |
모친 | 디자 퇴카르마 |
배우자 | 포공몽자 티참 네팔인 발모브자 티췬 당인 문성공주 탕구트인 미냥자 쟐모춘 샹슝인 리틱만 |
자녀 | 궁송궁첸 |
종교 | 티베트 불교 |
능묘 | 총예 계곡 |
송첸캄포(티베트어: སྲོང་བཙན་སྒམ་པོ་ 쏭짼감뽀, 581년 ~ 649년)는 토번의 제33대 첸포이다. 구당서에 의하면 토번의 황실은 선비족 탁발씨의 후예이다. 주변 왕국을 정복하여 최초로 토번을 통일하였다. 비단길과 쓰촨 방면과 당나라 서부를 정벌하여 당나라의 정복에 성공하였고 토번의 지배영토를 당나라 수도 바로 옆까지 확대하여 당나라를 압박했다. 당나라의 장안 근처까지 정복하였으며 장안을 유린하고 당나라의 굴복을 받고 나서야 장안 옆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송첸캄포는 정실 왕비가 존재하였으나 634년 당나라에 당 태종의 공주를 공녀로 바칠 것을 강요하였고 당 태종이 이것을 거절하자 20만 토번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 장안을 점령하고 유린하였다. 이후 당나라의 당 태종은 송첸캄포에 문성공주를 공녀로 보냈고 송첸캄포는 당나라 문성공주를 첩으로 삼았다.
생애
[편집]송첸감포가 태어난 연도는 정확하지 않은데, 티베트에서 송첸캄포는 소띠 해에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는 557, 569, 581, 593, 605 또는 617년 중 하나이다. 송첸캄포의 탄생에 관해서는 569년, 593년, 617년을 포함해 많은 날짜가 제시되고 있다.
재위 년도는 정확하지 않으며, 다만 티베트에서는 당 고조가 제위에 올라 당나라가 건국되기 1년 전인 617년쯤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살당한 그의 아버지 남리송첸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적극적으로 당나라를 정벌하며 20만 군대로 당나라 수도 장안을 점령한 이후 당나라의 굴복을 받아내고 장안 옆에 군대를 주둔시켜 언제든 장안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당나라 수도 장안 바로 옆까지 많은 당나라 영토를 정복하였다.
송첸감포는 티베트 문자를 만들기 위해 인도에 특사를 파견하여 티베트의 문학과 번역, 그리고 법률 기록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많은 새로운 문명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서》에는 648년 인도에서 건너온 군대를 중국의 도움으로 격파한 후, 649년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당고종이 ‘빈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비단 삼천필 하사했으며, 티베트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누에씨와 회반죽, 술을 만드는 기계, 종이와 먹을 만드는 장인을 파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첸감포는 중국에서 수공예품과 천문학을 들여왔으며, 티베트 문자와 불교는 인도에서, 재화는 네팔과 몽골에서, 행정체계와 법은 북쪽의 위구르의 것을 들여왔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하여 송첸감포는 라싸를 수도로 하여 영역을 확대하고, 티베트 문자를 제정하였다. 가르통첸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외교에 힘썼으며, 네팔로부터 왕녀 브리크티 데비(타크리 왕국의 창시자 안슈 바르만 왕의 딸)를 정실 왕비로 맞이하였고, 장중(象雄)왕과 민약왕의 딸도 후궁으로 맞이했다. 당나라에 공녀를 강요하였으나 당나라 당태종은 거부하였고 송첸캄포는 20만 티베트 대군으로 장안을 유린하였다. 당 태종은 송첸캄포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고 당나라 문성공주를 공녀로 보내 송첸캄포의 아들 궁송궁첸왕(재위 641-643)이 당나라 문성공주를 첩으로 삼았다. 궁송궁첸 왕이 낙마사고로 죽은 후, 송첸캄포는 63세에 복위하여 문성공주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티베트 역사산책
외부 링크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송첸캄포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전 대 남리뢴첸 |
제33대 토번국 첸포 617년 - 649년 |
후 대 궁송궁첸 |
전임 남리뢴첸 |
티베트의 국가 원수 617년 ~ 649년 |
후임 궁송궁첸 |